똑같은 위치라도 수행하는 역할이 다르다.
현대축구는 매우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축구의 변화를 가장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아마 '전술'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축구는 여러 감독들에 의해서 전술에 변화가 일어났다.
20세기 초반 초반 공수가 분리되고 대인마크에 기반을 둔 W-M 시스템, 1960년대 펠레가 이끌었던 브라질의 4-2-4 시스템, 이를 대응하기 위해 리베로를 발전시킨 이탈리아의 카데나치오, 혁신적이었던 1970년대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 토탈 풋볼, 1980년대 4-4-2와 4-3-3의 정착 그리고 현대축구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990년대 아리고 사키가 집대성한 압박축구가 탄생해다.
2000년대에 들어서 축구전술의 변화는 매우 빨라졌다. 과거에는 '골키퍼-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로 포지션을 나누면 충분했다. 하지만 새로운 전술이 나오고 이에 맞추어 다양한 포지션이 생겨났다. 2000년대 초반 과거의 득점에 집착하는 공격수와 다르게 내려와서 득점기회를 창출하고 공격의 물꼬를 트는 플레이메이커 '공격형 미드필더'가 등장했다. 하지만 금방 이를 압박하기 위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나타났다. 이렇듯 축구 전술에서 다양하며 세분화 된 포지션이 나타났다.
2010년에 이르러서 포지션의 의미는 퇴색된다. 어떤 '위치'에서 뛰는 것보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선수들은 점차 공수를 겸비하게 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공격수 포지션이라도 수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로인해 선수들의 매우 다양한 역할들이 생겨난다.
전술의 변화에 따른 선수들의 새로운 역할이 생겨나고 있다. 이 글을 통해서 전술의 변화에 따라 어떠한 역할이 요구되었는지?, 축구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가 누군지? 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황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리베로계의 혁명가였다.
리베로의 탄생
193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의 칼 라판 감독은 스위퍼의 개념과 동일한 베로우어(verouller)라는 역할을 만든다. 베로우어는 수비수보다 더 후방에서 스토퍼를 커버해주는 수비수였다. 이후 이탈리아 언론에 의해 베로우어는 '가장 후방에서 자유롭게 수비를 조율하는 선수'라는 의미로 리베로 'Libero'로 불리워진다.
좌) 로코의 AC밀란 1-4-2-3 - 우) 에레라의 인테르 1-3-3-3
리베로의 발전 (이탈리아)
1960년대 브라질의 뛰어난 기술을 앞세운 4-2-4를 막아내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리베로를 발전시킨다. 기술이 뛰어나고 공격적인 브라질 선수들을 1:1로 막을수 없다고 판단하여 리베로를 두어서 수비진에서 수적우위를 가져갔다. '빗장을 걸어 골문을 잠근다'는 의미 카테나치오가 탄생했으며 리베로는 그 중심에 있었다.
리베로를 중심으로한 '카테나치오' 이탈리아 축구는 1960년대의 축구계를 군림했다. 로코의 AC밀란은 62/63시즌과 68/69시즌에 유로피언컵에서 우승하였고, 에레라의 인테르는 63/64, 64/65시즌 유러피언컵 2연패를 하였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1968 유로 우승, 1970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리베로의 역할은 1960년대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성과를 보였고 수비전술의 핵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당시 리베로는 4명의 공격수를 막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최후방에서 스위퍼 역할만을 하였다. 이때까진 스위퍼=리베로=베로우어가 된다.
좌) 요한 크루이프 - 우) 프란츠 베켄바우어
리베로의 혁명 (서독, 그리고 베켄바우어)
1970년대에는 4-2-4에서 변화된 4-3-3이 정착하였다. 4-2-4의 수비적인 문제점이 대두가 되었고, 공격수를 내려 4-3-3-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4-3-3을 기반으로한 토탈풋볼도 영향을 끼쳤다. 공격수가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리베로는 보다 여유로워지고 수비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베켄바우어가 등장하였다.
베켄바우어는 리베로의 오늘날 정의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베켄바우어는 처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수비능력과 공격능력을 고루 갖추었고 테크닉과 축구지능이 매우 좋았다. 그는 독일식 리베로 시스템을 실현시킬 유일한 선수였다.
독일식 리베로 시스템은 수비의 부담이 줄때 리베로를 전진시켜 중원이던 공격진이던 수적우위를 갖추는 것이었다. 축구지능이 뛰어났던 베켄바우어는 공격하는 리베로를 훌륭히 실천할 수 있었고 1972 유로, 1974 월드컵을 우승하며 전 세계의 '공격하는 리베로'를 알렸다. 특히 1974 월드컵때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무너뜨리며 베켄바우어는 리베로로서 자신을 널리 알렸다. 이후 공수가 고른 선수가 리베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서독식 리베로 운영은 이후 위와 같은 3-5-2 시스템으로 정착하게 된다.
리베로의 전성기 그리고 끝
반면, 리베로가 발전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미헬스와 크루이프의 토탈풋볼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지만 전술에 대한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토탈 풋볼의 매력과 효용성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었으나 실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팀들은 리베로를 이용하며 안정적이고 내려앉는 수비를 보여주었다.
독일식 리베로 운영은 많은 팀에 큰 영감을 주었다. 1980년대에 독일식 리베로는 3-5-2 시스템으로 정착이 되었다. 수비시 5-3-2로 공격시 4-3-3으로 변화가 용이했으며 이는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거쳐 리베로 전성시대를 알린다.
하지만 토탈풋볼의 계보를 잇는 아리고 사키의 4-4-2 AC밀란이 등장했고, 압박축구의 시작을 알린다. 현대축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아리고 사키의 '사키이즘'은 포백과 지역수비에 기반한 존 프레싱(압박) 축구는 필드 플레이어 10명간의 간격이 중요했다. 선수간 간격을 맞추기 위해 수비라인을 올려서 전방압박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리베로는 간격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오프사이드 트랩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리베로는 1990년대 점차 모습을 감추게 되고, 아리고 사키는 축구의 판도를 뒤바꾸어 놓는다.
베켄바우어의 공격가담.gif
리베로는 압박이 중요시 여겨지는 현대축구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공격과 수비과 분리되던 과거의 축구와는 달리, 11명 전체가 움직이고 압박하고 간격을 유지하는 축구에서는 리베로는 잉여자원이 될 것이다. 결정적으로 수비수들의 상향된 수비능력은 리베로 종말에 힘을 보태고 있다.
리베로는 전술의 변화에 따라 탄생하고 발전하고 사라지게 된 아주 대표적인 역할이다. 리베로는 약 60년간 필드위에서 중심이 되어왔다.
안드레아 피를로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교과서이다.
고개를 떨구는 플레이메이커
플레이메이커는 공격수의 뒤에 뛰면서 창의적인 플레이으로 공격을 이끈다. 황혼기의 펠레에서 마라도나와 플라티니를 거쳐 1980~1990년대에 플레이메이커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특히 이때는 세리에A가 황금기를 맞이하며 전 세계의 내노라하는 플레이메이커는 이탈리아에 모인다.
하지만 혼자서 경기를 좌지우지했던 플레이메이커들은 얼마가지 못하게된다. 그 이유는 점차 축구는 점점 강한 압박을 시도하기 시작하고 지역방어 개념으로 협동수비가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날고기는 플레이메이커라도 중원에 위치하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박과 태클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 완성도있는 압박축구를 선보이는 팀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많은 팀들은 4-1-2-3 또는 4-2-3-1과 같이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반드시 사용했다. 그들은 수비진을 보호하면서 플레이메이커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였다. 점차 플레이메이커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최고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들 (공통점: 대지를 가르는 패스??)
뒤로 물러선 플레이메이커들
플레이메이커들은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낮은 곳을 내려왔다. 공격수와 미드필더 사이에서 뛰던 그들은 미드필더와 수비사이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곳은 수비형 미드필더로부터 자유로웠고 압박이 덜 한 곳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줄여서 딥플메)들은 기본적으로 수비진을 보호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갖고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시 요구되는 것들은 패스와 체력이다. 딥플메는 공격의 시작점이다. 기존의 플레이메이커들처럼 번뜩이는 마무리패스와 득점은 할 수 없지만, 공격의 방향을 선택하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필드위에 또 다른 감독(연출가)이 되겠다.
공격을 설계하고 그것이 막힐시 다시 공을 돌려받아 다른 공격루트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공격을 시발점이 된다. 그래서 딥플메는 정확한 패스와 흐름을 읽는 판단력, 그리고 공을 순환시키기 위해 항상 리시브를 준비해야한다. 뛰어난 체력이 요구되겠다.
안드레아 피를로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역할
레지스타 '연출가', 안드레아 피를로
피를로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내가 드리블을 빠르고 잘 했더라면 이니에스타처럼 플레이를 했을텐데..." 피를로가 한 말이다. 피를로는 사실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이다. 하지만 드리블이 엄청 뛰어난 편은 아니였고 스피드도 빠른편이 아니였다. 그래서 그는 후방으로 내려와 딥플메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 브레시아는 바지오를 전방에 피를로를 후방에 배치시키며 공격기회를 만들었다. 두개의 탑은 아직도 많은 축구팬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AC밀란에서 뛰면서 그는 완성형 딥플메가 되어간다. AC밀란에서 뛰면서 그는 딥플메로 환상적인 변신을 성공한다.
피를로의 롱패스.gif
사실 피를로 이전에 과르디올라나 레돈도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다. 그런데 피를로의 패스는 그 어떤 선수들과 차별되었다. 피를로만의 상당히 정확하고 치명적인 곳에 떨어지는 롱패스는 2선이 아닌 3선 후방에서 공격수를 도와 플레이메이킹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그는 생각보다 넓은 활동반경을 갖고있다. 그가 뛰었던 AC밀란과 유벤투스 그리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모든 공격은 그를 거쳐간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를 거쳐가야만 효율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피를로는 항상 동료들의 패스를 받으러 뛰어다녔다.
퍼거슨의 맨유가 보여주었던 포워드의 수비가담은 '디펜시브 포워드'라는 역할을 만들어낸다.
너무하다....이제는 너희까지 압박해?
플레이메이커들은 2선에서 압박을 피해 3~4선까지 내려왔다. 내려온 3~4선은 공격수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들의 창의성을 발휘하기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방해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그래서 딥플메들은 공격의 템포를 조절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딥플메를 거쳐서 공격전개하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점차 팀들은 딥플메에게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 숨은 복병이 있었다. 압박축구가 점차 발달하면서 공격수들의 수비가담이 강조되었다. 우리 수비진영에 넘어오면 압박하여 볼을 탈취했던 기존의 압박과는 다르게, 공격수부터 압박을 시작했다. 물론 딥플메들은 공격수의 어설픈 수비를 충분히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박지성과 루니같은 선수들은 수비력이 상당한 공격수에게 잠시 지체되면 이윽고 다른 상대선수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렇다 굉장히 높은 위치에서부터 압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방압박이 도래했다.
딥플메들은 공을 빼앗기진 않았지만 또한 지속적으로 우리 수비진을 보호해주었지만, 플레이메이킹을 할 수가 없었다. 디펜시브 포워드는 딥플메가 더 나은 공격루트와 상대 수비의 빈틈을 찾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점차 딥플메들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이상 한명의 플레이메이커를 찾기 힘들어졌다. 공격전개는 공동의 몫으로 변해가고 있다. 압박축구가 발전하면 할수록 필드위의 NO.10의 역할을 지워버리고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풋볼하드캐리
http://fbhardcarry.tistory.com/
http://blog.naver.com/zmzm7410
다음 편 - 中 - 주제.
1.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를 몰아내다. 그리고 4-4-2의 약점을 보완하는 '디펜시브 포워드'
2. 중앙을 벗어나 사이드로 이동한 플레이메이커들, '와이드 플레이 메이커'
3. 2010년 전후를 주름잡았던, 변화된 측면플레이 '인사이드 포워드'
다다음 편 - 下 - 주제.
1. 중앙수비수를 현혹시켜 다른 공격수에게 뒷공간을 제공한다. '펄스나인'
2. 높게 올려버린 수비라인, 뒷공간을 막는 다시 돌아온 스위퍼! '스위퍼 골키퍼'
3. 편견을 깨버리는 풀백의 움직임, 포지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인버티드 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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